CONCEPTZINE vol.116 수집
EDITOR'S LETTER
올해 초, 주제 회의에서 이번 호 주제인 ‘수집’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을 땐 ‘나쁘진 않지만, 나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는 것’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수집’이라는 주제를 꺼낸 팀원이 애니매니션 문화를 좋아해, 만화책과 피규어 모으는 걸 취미로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입에서 ‘수집’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나는 그렇게 마니아처럼 무언가를 좋아하는 게 없는데…?’ 하는 생각에 나와는 먼 것으로 느낀 것이죠.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팀원들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길래, 지금은 확신이 없으니 “킵해두자!” 하고 미래의 주제로 미뤄놨습니다.
하지만 수집이란 단어가 어릴 적부터 ‘우표 수집, 앨범 수집’처럼 워낙 자주 들어 익숙하고, 맹목적으로 ‘그런 취미 있으면 좋지.’라는 생각을 했던 터라 이 주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어 팀원들과 기회가 될 때마다 수집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먹고 들른 카페에서 팀원들에게 각자 무엇을 수집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대체로 ‘그런 거 없는데…?’ 하는 반응이었는데, 그중에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이것도 수집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저는 여행지에서 받은 영수증을 다 모아와서 여행 기록으로 남겨놔요.” 그 얘기를 듣던 다른 팀원이 “어? 그런 것도 수집이라면, 저는 영화관에서 본 영화표를 모아요. 모바일로 예매한 것도 출력해서요.”라고 하더라고요. 두 팀원이 수집하는 것에 대해 듣고 나니, 그제야 저에게도 수집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모든 편지를 모아놓고 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고백한 뒤 받은 답장부터 에디터 캠프 수강생이 건네준 목캔디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의 작은 편지까지…, 웬만한 편지는 다 갖고 있죠. 또 편지를 모아놓은 상자 옆에는 어릴 적 친구들과 찍고 나눠 가진 스티커 사진(네 컷 사진 아니고 스티커사진입니다…), 학기 초 새로 찍을 때마다 주고받은 증명사진, 그리고 수학여행이나 소풍 때마다 제가 필카로 찍은 친구들 사진이 모여있는 상자도 있죠.그것들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와…,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한결같이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무의식적으로 모아놓은 것들을 통해 내가 어디에 가치를 두는 사람인지 새삼 깨닫게 된 거죠.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고 있나요?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면, 저처럼 의도치 않게 모으고 있었던 게 없는지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기록에 관심이 있어 기록광 계정만 팔로우하고 있지 않나요? 길에서 고양이를 만날 때마다 고양이 사진을 찍고 있진 않나요? 이런 것들도 ‘수집’일 수 있어요. 이번 한 달 동안은 내가 무엇을 수집하는 사람인지 돌아보고,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해 보길 바랍니다.
출간일 2024년 10월1일
263p, 115*154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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