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CEPTZINE vol.115 "당신은 오래 쓰는 사람인가요?"
EDITOR’S LETTER
제가 의류학 전공이라는 걸 아시나요? 패션을 전공할 정도로 옷을 좋아하고 옷 욕심이 많았던 저는 학창 시절 돈이 생길 때마다 옷을 사 모았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집에 있는 옷들과 잘 매치해 입을 수 있는지, 퀄리티는 괜찮은지 생각하기보다 저렴한 가격에 혹해서 사는 옷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한두 번 입으면 금방 싫증이 나 다음 해까지 입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반면, 제 친구는 조금 비싸긴 하지만 자기와 잘 어울리는, 퀄리티 좋은 옷을 골라 몇 해씩 입곤 했죠.나이를 먹고 쇼핑을 그렇게 많이 했음에도, 이런 습관은 몸에 깊이 배어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제 옷장은 늘 ‘적당히 마음에 들어서 산 저렴한 옷’들로 채워졌고, 계절이 바뀌어 옷장 정리를 할 때마다 그 옷들은 ‘이제 안 입을 옷’들로 구분되어 버려지기 일쑤였죠. 그렇게 제 옷장은 마치 철새처럼 철이 지나면 새로운 옷들로 채워졌다 사라지고, 다시 채워졌다 사라지곤 했어요.
‘오래 쓰기’를 이번 호 주제로 정하고 며칠 뒤 〈더현대 서울〉에 가서 쇼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제를 먼저 실천하기 위해 이번에는 꼭 ‘오래 입을 옷을 사자’ 다짐했죠. 그런데 제가 정말 필요한 옷, 제 마음에 쏙 드는 옷보다 안 사면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큰 폭으로 할인하는 옷에 자꾸 눈이 가는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함께 간 김재진 발행인이 옆에서 ‘지금 필요한 아이템이냐, 평소 즐겨 입는 스타일이냐, 집에 있는 아이템들과 잘 어울리냐, 내년에도 사용할 것 같냐’ 하며 따져준 덕분에 충동구매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 마음에 들어 ‘살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의 조건을 갖다 붙이니, 막상 살 만한 게 별로 없더라고요. 그러다 정말 마음에 드는 팬츠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제가 사던 팬츠 가격의 세 배 정도로 비싼 거예요. 이거 하나 사면 다른 아이템들은 포기해야 하니 망설여졌죠. 그때 김재진 발행인이 물었던 조건을 스스로 체크해 봤어요. ‘지금 필요한 아이템인가? Yes! 평소 내가 즐겨 입는 스타일인가? Yes! 집에 있는 아이템들과 잘 어울리는가? Yes! 내년에도 입을 것 같은가? Yes!’이렇게 조목조목 따져보니,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가격밖에 남지 않아 결국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 마음에 쏙 드는 걸 사니,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도 신이 나고, 내가 언제 이렇게 만족스런 쇼핑을 했었나 싶더라고요. 집에 와서는 이 좋은 옷을 오래오래 입고 싶다는 마음에 주름이 생기지 않게 옷걸이에 걸고, 먼지가 앉지 않도록 세탁소 비닐까지 씌워줬습니다. 제 취향을 가득 담아 고른 옷이다 보니 조금 더 잘 관리하고, 아끼고 싶어진 거죠.
이번 호 주제를 정할 때 ‘오래 쓰기’가 우리 삶에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환경 보호를 위해? 물론 중요합니다. 오래된 물건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추억? 이것도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만, 제가 오래 쓰기를 시도하며 새롭게 깨달은 건 오래 쓰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 결국 나를 조금 더 섬세하게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물건을 오래 쓰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색, 나에게 꼭 필요한 기능, 나의 취향, 나의 라이프스타일 등을 천천히 고민해 봐야 하니까요.물론 오래 쓰기를 위해 꼭 비싼 걸 구매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가격이 저렴해도 나에게 꼭 맞는 물건은 있으니까요.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을 통해 당신이 당신과 조금 더 가까워지길 바랍니다.
편집장 김경희
출간일 2024년 9월1일
259p, 115*154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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