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적당한 수온의 쾌적한 풀장처럼,
자연스럽게 스미다가 푹 빠져드는
부드러운 어둠의 소설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밤’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소유정은 해설에서 “보이지 않음으로써 거기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밤의 속성이며, 그런 점에서 서유미의 작품들이 밤을 닮았다고 짚어낸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 제시하기보다는 에둘러 감각하게 하는 이 소설들을 읽다보면 무언가를 전달받았다는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몸이 먼저 소설에 반응하고 있음을 감정의 요동을 통해 느끼게 된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서서히 깊어지다 어느덧 모든 것을 잠식하는 어둠처럼, 서유미 소설은 독자의 마음에 부드럽게 스며들어 그것을 장악하고 만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강렬하게 말하는 이러한 특성은 서유미 소설을 짧은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느닷없이 몸에 이상이 발견되어 열심히 달리던 인생의 트랙에서 이탈해야 하거나(「토요일 아침의 로건」), 부유하고 선망받던 위치에서 내려와 별 볼 일 없던 친구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지나가는 사람」). 직장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관계가 파탄 나버린 전 배우자를 독촉해 위자료를 받아내야 하는 이도 있다(「기다리는 동안」). 삶이 계속되는 한 정점에서 내려와 점차 쇠퇴하고 남루해지는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때가 오고, 그 필연적인 상실감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 감각이라고 서유미 소설은 말한다. 하지만 소설에서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그 주제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온 장면들, 이를테면 몸의 이상을 알게 된 후 그제야 일상 속 작고 사소한 요소들을 새삼스레 자각하고 들여다보는 순간이나, 과거의 영광을 잃고 불우해진 이의 쪼그라든 모습에 내리쬐는 환한 봄볕의 이질감, 오래 비워두어 온기를 잃은 옛집을 찾아가 부부였던 두 사람을 닮았으나 차가워진 장식용 조각상을 손에 쥐어보았을 때 느껴지는 감촉 같은 것들이다.
또한 밤은 어떤 하루든, 누구에게든 약속처럼 찾아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서유미 소설에서 밤은 가사노동에 지친 여성들이 아파트 단지의 벤치로 나가 숨을 고르는 한때이고(「밤의 벤치」),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가정 내의 균열을 조용히 체감할 기회를 제공하는 잔인한 하루의 끝이자(「그것으로 충분한 밤」), 외부 세계에서 다친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며 회복을 꾀하는 성찰의 시간이다(「밤이 영원할 것처럼」). 인물들이 공평하게 맞이하는 각양각색의 밤을 묘사할 때도 서유미는 서술자의 위치에서 거리감을 유지한다. 삶의 고충들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이는데도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건조하고 묵직한 문장이 균형을 이루며 세련된 인상을 남긴다. 이 균형감과 세련미는 서유미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보적인 쾌적함의 비결이다.
밤의 또 한 가지 특성은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는 것이다. 소설은 삶에 찾아온 어둠에 대해 말함으로써 어둠이 잠시나마 물러난 일상 또한 상상해보게 한다. 이러한 서유미식 낙관이 빛을 발하는 단편 「다른 미래」는 계획적이고 통제적인 성향을 지닌 엄마가 즉흥적이고 허술한 데가 있는 딸과 함께 바다로 여행을 떠나 전에 없던 자유를 만끽하는 이야기이다. 여름비와 갖가지 모양의 무수한 파도를 피하려고 애쓰던 그녀는 결국 시원하게 몸을 적시는데, 물에 젖어서는 안 된다는 혼자만의 규율이 무너진 후 느껴지는 것은 의외로 규율에서 벗어난 후련함과 해방감이다. 이처럼 삶을 지키려는 인간의 노력과 상관없이 불행은 시시때때로 거대한 파도처럼 덮쳐와 일상을 침범한다. 하지만 서유미는 불행이라는 불청객을 호들갑스럽게 다루는 대신 매일 왔다가 가는 밤을 맞듯이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밤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소설의 메시지를 되뇌다보면 지금 눈앞에 마주한 어둠도 내일의 빛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진다.
ISBN 9788954636254
출간일 2024년 08월 30일
244쪽, 134 * 201 * 19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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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영원할 것처럼